2018년 1월 30일 화요일

예전에 정리했던 글 "한국은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만 한다"--- 일본인의 분석을 분석해 알아보는 일본인의 정신세계




위의 기사는 인터넷 포털 뉴스를 주기적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한 번은 봤던 기사일 수 있다.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볼 수 있는 일본 특유의 분석과 그걸 그대로 인용해 마치 이성적인척하려는 감상적인 조선인 기자, 그리고 "맞는 말 아닌가"란 댓글을 달면 그게 이성인 줄 아는 조선인 특유의 댓글이 합쳐진, 3박자를 갖춘 훌륭한 뉴스 콘텐츠가 됐었다.

저 기사의 내용은 JTBC 뉴스룸에서 "팩트체크"로 다뤄진 적이 있다. 한마디로 일본 특유의 날조 데이터, 혹은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할 지능 수준이 안되면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해버린 일본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가지고 있는 지능 수준에 비해 너무 과도한 지적 활동이 요구되는 "데이터 해석"은 일본인에게는 무리라는 것을 보여준 기사다. 
어쨌든, 당시 저 기사가 나왔을 때 다른 곳에서 정리한 글이 있었는데 우연히 발견했다. 그 글을 이 블로그에 옮겨 적는다.



***

일본인 혹은 일본 언론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결국 자기 프레임에 갇힌 채 한국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확히는 자기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서구로부터 들었던 각종 단점들을 다른 아시아 국가에 떠넘기는 습성이다. 내가 일본인의 말(분석)을 들어보면 현재의 일본인의 사회적, 문화적 열등함이 보인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 중시의 사회로 거짓말과 사기가 판친다'

이것은 일본인이 일본 특유의 사회를 자기비판적으로 하던 말이다. 도시바 회계 조작, 미쓰비시 연비 조작, 도쿄 올림픽 뒷돈 의혹, 도쿄 도지사 불법 정치자금 등.. 이건 일본이 사기 국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정치체계가 공존하는 모든 사회에서 부정부패, 기업 회계조작 등의 사건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완벽하고 좋은 시스템을 꿈꾸지만, 뇌물을 받고 사기 치는 사건 사고들은 완전히 막는 시스템은 아직 발명해내지 못했다.

재밌는 것은 보통의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다. 객관적인 사고를 하지 못해 한국으로부터 위안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미디어가 발달해 일본 사회가 돌아가는 사정을 한국인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는 깨끗해, 오직 한국이 문제야"라며 선동한다. 따라서 한국인을 자극하는 건 불가능하지만(조선인들은 가능하다), 세계의 정세와 정보에 고립되어 있는 일본인에게만 자극이 되는 대내 선동용 목적의 뉴스란 것이다. 이런 걸 지켜보고 있으면 7살짜리 애가 자기 눈을 가리고 '나 안 보이지?' 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발로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 체계는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관찰되는데, 유독 일본인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면 더 이상 일본 교육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고 민족성에 기반을 둔 분석을 해야 되는 게 타당하다.

일본인들이 감정적으로 한국에 분노해버리는 지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일본이 극도로 계층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명령에 복종하고 상하관계를 분명히 하고, 한국은 식민지였기 때문에 자신의 아래라는 괴상한 편견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런 상하관계를 뒤집어 버리는 "역사적으로 일본이 열등하다는 근거"는 일본인을 충분히 욱하고 열받게 만든다. 한민족의 역사에서는 조선 후기에 동등하고 평등한 인간관계가 무너졌지만 일본은 이러한 역사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수직사회, 계층 사회는 일본 민족들에게는 더 이상 저항하고 극복할 수 없는 고유한 문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모두 공감할 테지만 후진적인 사고 체계다. 중세 시대에서부터 내려온 옛날 사고방식. 한국도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분명히 이런 사고 체계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이런 부분을 계속 공론화하고 자기비판을 통해서 고쳐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헬조선이란 말이 나올 때까지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서, 오히려 이게 문제가 되는 나라다. 그러나 일본은 그런 자기비판의 기능을 가져본 적이 없고, 근대 교육으로 만들어진 비판 기능도 정체된 나라다. 한국에서 없어진 "백정"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부라쿠민"이 문제가 되는 것이 한 예이다. 

미국 등 서구의 영향으로 일본인의 문명화를 위한 근대교육이 행해졌지만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자기비판 기능이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고, 오히려 일본 특유의 국수주의와 '이지메' 문화와 결합하면서 열등해지고 악화되고 약화되었다.

일본이 아직까지 봉건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있고 앞으로도 개선의 조짐이 안 보이는 이유에 대해 역사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도래인의 이주를 들 수 있다. 도래인은 토종 왜인에게 처음부터 넘볼 수 없는 대상 숭배의 대상이 되며 열도에서 지배계층을 이뤘다. 일본에서의 지배계층 형성이라는 건, 비슷하거나 동일한 종족 내부에서의 힘의 싸움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 차이가 나는 도래인과 토종 왜인과의 사이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도래인은 도래인끼리 왜인은 왜인끼리 계층이 형성되고 그 왜인은 도래인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건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의 관계 정도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피지배계층은 오랜 세월 지배계층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 그렇다고 반기를 들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이다 보니 피지배계층끼리의 사이에선 더 이상 뺏기지 않기 위한 극도의 눈치 보기, 분위기 살피기, 개인주의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더 얻기 위해선 지배계층에 절대복종해야 하므로 전체주의적 성향을 동시에 가져버린 일본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다.

현대의 일본인이 가진 국민성이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한국 등 보통의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긴 하다. 하위계층의 기득권 지지 현상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소수가 아닌, 설사 도래인과의 혼혈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더라도 그 인구가 절반 이상은 될 거라는 점 때문에 이러한 국민성은 역사적으로 고착되어 미래에도 바뀌기 힘들 거라고 보는 게 옳은 분석이다.

의외이지만,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키고 날조가 상식이 되는 일본 위키에서도 일본의 범죄 통계는 65년 이후 발생건수가 아닌 "인지 건수"를 사용하면서 암수범죄를 잡지 못한다고 까는 글이 있다. 이것만은 도무지 날조를 할 수 없나 보다. 

하지만 이건 통계이므로, 통계를 해석할 수준이 안되는 일본 국민들에게 이 통계를 어떻게든 스토리로 재창작해 선동하기 시작했다. 아직 조선인 근성을 버리지 못한 조선인 기자들도 설마 일본 언론이 날조를 하겠어? 란 사대가 깃든 편견으로 "심적인 동조"가 있으니 열심히 인용하는 것이다. 저 기사 중에 가장 재밌는 부분은 명예가 없는 체면이라는 부분. 이거 서양에서 일본 깔 때 주로 쓰는 문장이었다. 일본인 스스로 "명예"는 좋은 이미지로 생각되는지 그것만 자신이 챙기고, "체면"은 한국으로 떠넘긴 기사다. 진실을 알면 유아 수준으로 쓰인 상당히 재밌는 기사다.

가끔 일본인들의 감각으로 날조를 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한번쯤이라면 열등해 보이는 것도 좋은 쾌감이 든다. 한번 해보자면, 2013년 일본 인지 건수 기준 형법범 총 191만 중 절도 범죄가 무려 98만이다. 한국의 경우 2014년 발생건수 기준 100만 중 절도 범죄는 26만이다.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인의 절도 범죄수는 압도적이다. 일본인들이 만든 사회는 도대체 왜 절도가 만연해 있는가. 근대 사법체계가 기본적으로 개인의 사유재산을 어떻게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투쟁이었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일본인은 신성한 개인의 사유재산을 절도하는 행위가 사회의 문화와 상식이 되어버린 열등한 전근대인들이 모여있는 나라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