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30일 화요일

일본에서 벌어지는 한자에 대한 집착과 논쟁


일본에서 주로 벌어지는 한자에 관한 집착적인 논쟁은 특유의 열등감에 기인한 고집스런 자기 주장때문이다. 문자는 인류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이긴 하나, 그 본질은 편리를 위해 만들어졌을 뿐이니 편리를 떼어놓고는 문자에 대한 우열 논쟁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외의 논쟁은 거추장스럽고 의미없으며 감정적일 뿐이다.


한자의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해, 문자 개선에 실패한 중국과 일본은 이후 서양에 의해 한자(표어문자)의 열등성이 밝혀졌음에도 스스로 인정하기 분한지 필사적으로 반발하며 어떻게든 장점을 찾아보려는 우매한 행동을 보여왔다. 그나마 중국은 스스로 한자를 만든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다소 극단적인 행동이 덜하지만, 스스로 만든 히라가나가 열등해 전적으로 한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일본은 한자에 기여한 바가 없어서인지 유독 필사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을 비한자권 문명인이 보고 있으면 한자가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나? 하고 오해 되기도 한다. 

"한자 때문에 어쩌구~ 저쩌구~"

동서고금을 통틀어 평범히 존재하는 "문자"를 자민족의 정신세계로까지 엮어, 민족의 장점으로 연결을 시도했던건 일본 민족이 유일하다. 이러한 일본인의 극단적 현상은 한국인이 이해해야할 부분도 존재한다. 동아시아에서 범용으로 쓰이는 한자를 만든 중국, 그리고 한자의 미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한글을 만든 한국인에 비해 일본은 아무것도 해놓은게 없기 때문이다. 글자와 관련된 부분은 사실 한국과 중국이 특별한 것이지 세계적으로 보자면 일본은 평범한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시각에 갖혀 있는 일본인은 한국과 중국에 뒤질수 없다는 특유의 열등감 때문에 일본어의 지위를 격상시키지 않으면 도저히 정신안정이 안되는 것이다. 그 노력이 과해 이제는 열등한 한자의 세계에서 빠져 나올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통계를 보면 젊은 세대들은 스마트폰과 PC의 영향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 문해력과 어휘력이 우수하다고 나오는게 세계적의 보편적 현상인 반면에, 일본과 중국은 스마트폰과 PC의 영향으로 젊은 사람들이 한자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혼내는 노인들이 존재하는, 21세기에 아직도 "문자"로 싸우는 국가들이다. 일본인들은 한국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한자때문이라고 진지하게 믿고 있다. (참고로 한국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는 한자 때문이라는 이상한 이론이 아니라, 현재 노벨상을 받아야 되는 한국 노인들이 어떠한 교육을 받아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적어도 이 세대는 노벨상에 근접할 수 없는 세대란 걸) 

문자는 진리를 찾는 "학문"이 아니다. 문자가 열등하면 민족이 괴롭다. 특히, 서구에서 전문영역의 어휘를 끊임없이 일상 어휘로 바꾸고 약자 사용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보면 그들은 인류의 번영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일본 사회는 문자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선 필요이상의 암기력이 요구되므로, 자국내 사람들끼리도 어휘 수준의 격차가 심하다. 5만자에 이르는 한자를 모두 사용할 수 없으니 나라에서 필수 한자를 지정했는데(-표음문자 사용국가와는 달리 외우지 않으면 표어문자로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어휘의 확장성도 막혀버렸다. 일례로 한국에서 야채와, 채소의 구분은 일본 또한 그러했으나 채소라는 한자가 필수 어휘에서 사라져 단어조차 없어진 것이다. 현재의 일본인은 '채소'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 그 결과, 새로 수입되거나 만들어진 개념의 대부분은 표음문자인 영어를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장의 여러군데에서 영어 단어가 사용된다. (웃긴 사실은 일본 민족들의 영어 실력은 세계 최하위라는 것. 이건 그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한자정신세계론의 부작용이다) 어쨌든 단어 뿐이라면 일본도 영어를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다. 어휘를 확장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는 그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의미없는 한자를 많이 외운" 그 분야와 상관없는 전문가들 뿐이다. 자국 어휘의 확장성을 전적으로 이 황당함을 가진, 전문가도 아닌 일부에게 의존한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표어문자(한자)를 암기하기 위해서는 그 뜻을 알기 위해 표의문자(히라가나)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 할 일을 두 번하는 이 멍청한 민족은 뭐가 그리 좋은지 스스로 자신들이 "한자" 때문에 위대하다며 세계에 울부짖지만, 세계는 어째서인지 일본인의 필사적인 울부짖음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다. 한자를 모르는 우리의 무식한 세계인들은, 일본인에게 일일이 설명하며 한자 사용이 왜 미개한지 설득하기에는 세계인들이 많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한 민족 정도는 그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아래는 일본의 일부 선지자들이 스스로 주창한 한자 폐지론이다.

  • 명치 5년(1872) 주미공사 모리 아리노리 후일의 문경부가 일본은 무역입국을 표방하고 있으므로 세계무역을 주름잡고 있는 영어국민의 말을 국어로 채용하지 않고서는 일본 문명의 진부는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 1890년(명치 23년) 중의원으로 첫 당선된 그후 25회 연속 당선의 오자키 이쿠오도 한자 망국론을 펴면서 영어나 에스페란토어를 국어로 채용할것을 거듭 주장. 1946년 일본 대표 문호로 추앙 받는 시가나오야 는 일본의 국어처럼 불완전하고 불편한것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래의 일본은 진정한 문화국이 될수 있는 희망은 없다. 면서 프랑스어를 국어로 채용할것을 월간지 '개조' 4월호에 기고.

  • 언어 사회 학자 스즈키 다카오 게이오 대학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슬람 인도 중국등 오랜 문명은 설혹 영양실조로 육체는 보잘것 없이 되도 문명을 파는 일은 없다. 그런데 독자적인 문명을 가꾸어 본적도 없고 언제나 그때 그때 앞서가 있는 외국 문명을 마치 자동차의 부품이라도 바꾸는듯 들여왔던 일본은 극단적인 말을 갖자는 의견이 나올수도 있는것이다. 일본은 부품 교환형 문명. 장기 이식형 문명.이기 때문에 자국어(한자) 폐지론도 나오는 반면, 정신적으로는 스스로 식민지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제대국으로 세계에 군림하게 된 일본은 이제 한자를 약식화한 가나문자를 '외래문화의 일본화'로 자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으나 일본 스스로의 고유문자가 없다는 것은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참을 수 없는 문화적 콤플렉스였다. 18세기 에도 중기 이후 국학이 진흥되면서 한자 도래이전 상고시대 때부터 일본 고유의 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일었던 것은 그 콤플렉스의 발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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